부동산 상식: 공실(空室)의 시대는 없다, 매력 없는 공간만 있을 뿐

을지로와 성수동이 증명하는 상업용 부동산의 생존 공식

마천루의 그늘과 을지로의 밤

필자가 근무하는 리맥스 마이스터가 위치한 서울 도심업무지역(CBD; Central Business District)은 대한민국 자본의 최전선이다. 창밖으로는 최첨단 공조 시스템과 완벽한 보안을 갖춘 인텔리전트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하드웨어로만 따지면 흠잡을 곳 없는 1등급 자산들이다.

그러나 해가 지고 퇴근 시간이 되면 기이한 역설이 펼쳐지는 것을 목도한다. 사람들의 발길은 매끈한 대리석 로비가 있는 대로변 빌딩이 아닌,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법한 좁고 어두운 골목으로 향한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건물 4층, 간판조차 제대로 달려있지 않은 그곳에 가기 위해 그들은 기꺼이 줄을 선다.

우리는 이곳을 ‘을지로’라 부르고, 젊은 세대는 ‘힙지로’라 부른다. 이 현상은 부동산 시장에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최고의 입지와 시설을 갖춘 1층 상가도 공실로 신음하는데, 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저 낡은 골목은 평일 밤에도 북적이며 사람들이 모이는가?”

우리는 단순히 ‘경기 침체’나 ‘고금리’ 탓으로만 돌려온 공실의 원인을 이들이 아닌 ‘공간 소비의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제는 그 변화를 인정해야 할 때다.

‘입지(Location)’는 ‘목적지(Destination)’로 가야 한다

부동산 불패의 금언이었던 ‘첫째도 입지, 둘째도 입지’라는 공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이 시대에 반드시 절대적이지만은 않다. 과거의 소비자는 눈에 잘 띄고 접근하기 편한 곳을 선택했다. 이것이 입지의 힘이다. 하지만 검색과 SNS로 무장한 현대의 소비자는 다르다. 그들은 매력적인 콘텐츠가 있다면, 내비게이션도 찾기 힘든 미로 같은 골목까지 찾아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을지로야말로 ‘입지(Location)’가 이 ‘목적지(Destination)’에 다다랐을 때 보여주는 힘을 증명하는 현장이다. 을지로를 포함한 CBD에 상주하고, 업(業) 때문이든 유희(遊戱) 때문이든 아니면 제 나름의 이유 때문이든 이곳으로 모이고 움직이는 거대한 소비력 그 자체는 여전히 유효한 ‘입지’의 힘이다. 

하지만 이 소비자들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기 위해, 소주 한 잔에 취하기 위한 ‘입지’로 가는 것이 아니다. 낡은 인쇄소 골목이 주는 투박한 감성, 마치 보물을 찾듯 숨겨진 가게를 발견하는 ‘탐험의 경험’을 위한 ‘목적지’로 향한다. 그들에게 불편함은 감수해야 할 비용이 아니라, ‘힙(Hip)한 경험’의 일부다.

이제 역세권이라는 간판만으로 공실을 채우기는 어렵다. 고객이 굳이 내 건물, 내 상가를 찾아와야 할 ‘이유(Why)’를 제공하지 못한다면, 그 공간은 철저히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하드웨어의 결핍을 소프트웨어로 채우다

조금만 눈을 더 돌려 성수동을 보면 이 논리는 더욱 설득력이 강해진다. 기계 소음과 구두 약 냄새가 가득했던 붉은 벽돌 공장들은 이제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퉈 팝업 스토어를 여는 가장 세련된 무대가 되었다.

주목할 점은 그들이 건물을 헐고 새로 짓지 않았다는 것이다. 낡은 벽돌과 투박한 골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그 안에 독보적인 브랜드 스토리와 콘텐츠를 채워 넣었다. 물리적인 ‘낡음’이 소프트웨어(기획)와 만나 세상에 하나뿐인 ‘빈티지한 매력’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우리는 을지로와 성수동의 사례를 통해 명확한 시그널을 읽어낼 수 있다. 임대가 나가지 않는 건물을 두고 ‘건물이 낡아서’, ‘유동인구가 없어서’라는 식의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로 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건물의 연식이 아니라, ‘그 공간에 어떤 색깔과 이야기를 입히는가’가 될 것이다.

공간 중개인을 넘어 ‘공간 기획자’로

‘공실의 시대는 없다. 다만 매력 없는 공간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제 부동산 전문가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단순히 임대인과 임차인을 연결하는 ‘중개(Brokerage)’를 넘어, 죽어있는 공간에 숨을 불어넣는 ‘기획(Curation)’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떤 콘텐츠를 채워야 이 건물이 살아날지, 누구를 불러와야 이곳이 ‘목적지’가 될지를 고민하는 ‘공간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

필자가 서울 도심 중심업무지구의 화려한 빌딩 숲 사이에서 매일같이 낡은 골목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공간을 바라보고, 기획을 고민하며, 부동산의 미래를 만든다.

빈 공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비어 있다는 것은 아직 어떤 그림이든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 하얀 도화지에 매력적인 스토리를 입히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업(業)의 본질이다.

리맥스 마이스터 설인권 전무 

필자가 몸담고 있는 리맥스 마이스터는 서울 중구 무교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명동을 비롯한 서울의 중심 상업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1:1 부동산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리맥스 마이스터는 숙련된 부동산 전문가들이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외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전략을 제공하고 있으며, 고객들에게 최적화된 투자 및 사업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ikseol@remax.co.kr  문의 : 1533-3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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