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은 어떻게 태어나고 죽는가
무교동 골목을 들어서며
필자가 매일 출근길에 지나는 무교동·다동의 골목에는 두 개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현대적이고 최첨단을 자랑하는 프라임 오피스와 그 그늘 아래 골목 골목 사이로 1956년 문을 열어 올해로 70년 된 부민옥 앞에는 점심시간이면 여전히 찾아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1932년에 시작하여 93년의 세월을 품은 용금옥의 서울식 추어탕은 오늘도 이 도심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왜 어떤 공간은 한 세기 가까이 사람을 불러모으고, 어떤 공간은 수년을 버티지 못하는가.’
이 질문을 서울 전체로 넓혀 보면, 더 극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한때 서울에서 가장 세련된 거리로 불리던 가로수길은 지금 열 곳 중 네 곳이 비어 있다. 그야말로 ‘힙한 골목’의 대명사였던 경리단길은 그 흥행의 시절, 관공서가 추천한 맛집 39곳 중 5곳만 살아남았다. 반면 낡은 공장 지대였던 성수동에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앞다퉈 깃발을 꽂고 있다.
‘무엇이 골목을 살리고, 무엇이 골목을 죽이는가.’
상업용 부동산 현장에서 매일 이 질문과 마주하는 필자의 시선으로 서울 골목 상권의 탄생과 소멸의 메커니즘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골목은 왜 ‘뜨는가’ – 렌트 갭과 한국형 상업 젠트리피케이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말은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런던의 낙후된 노동자 주거지에 중산층이 유입되며 기존 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표현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멋있어진 동네’를 칭찬하는 표현이 아니다. 누가 들어오고 누가 밀려나는가를 묻는 도시사회학의 문제의식으로부터 기원한 개념이다.
이후 지리학자 닐 스미스(Neil Smith)는 이 현상의 본질을 ‘사람의 취향’보다 ‘자본의 계산’에서 찾았다. 그가 제시한 ‘렌트 갭(Rent Gap)’ 이론에 따르면, 현재의 토지 이용에서 발생하는 수익과 재개발 후 기대할 수 있는 잠재 수익 사이의 격차가 벌어질 때, 자본은 낡은 골목으로 되돌아온다. 오래되고 낙후된 곳일수록 이 격차가 크고, 그래서 투자의 유인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골목에서 벌어지는 일은 서구의 전통적인 젠트리피케이션과는 상이한 결을 지니고 있다. 유럽이나 북미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 주거지의 중산층화로 나타났다면, 서울에서는 ‘사는 사람의 교체’보다 ‘장사하는 사람의 교체’가 훨씬 빠르고 극적으로 체감된다. 이것이 ‘상업 젠트리피케이션(Commercial Gentrification)’으로 불리는 한국형 현상의 특수성이라 할 수 있다.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의 메커니즘은 놀라울 만큼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 임대료가 저렴한 낙후 지역에 개성 있는 소상공인과 창작자가 먼저 들어온다. 그들이 만든 독특한 분위기가 SNS를 타고 확산되면서 유동인구가 급증한다.
사람이 몰리면 건물 가치와 임대료가 뛰고,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와 대형 자본이 유입된다. 그들이 들어서는 만큼 초기의 개성 있는 점포는 빠져나가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익숙한 간판만 남으면 골목의 희소성은 사라져버린다. 희소성을 잃은 상권에는 필연적으로 다시 공실(空室)의 시대가 찾아온다.
쉽게 말해, 골목의 매력을 처음 만든 사람들이 바로 그 매력 때문에 올라간 임대료에 밀려 가장 먼저 떠나는 구조다. 이 역설적 순환이 마치 수학 공식처럼 서울 골목 상권의 흥망을 관통하는 핵심 메커니즘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이 공식이 가장 먼저, 가장 선명하게 작동한 거리가 있다.
가로수길 – 공실률 43.9%가 이야기해 주는 것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의 교과서적인 사례를 꼽자면 가장 먼저 신사동의 가로수길이라 하겠다. 2000년대 초반,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높은 임대료를 피해 디자이너 숍, 소규모 갤러리, 개성 있는 카페들이 이 거리에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걸을 만한 거리 폭, 이름 그대로 늘어선 가로수, 2~3층의 낮은 건물이 만드는 아기자기한 스케일. 하드웨어의 부족함이 오히려 감성적 소프트웨어의 배경이 되어 ‘감각의 골목’이라는 브랜드를 형성하였다.
2010년대 초중반, 가로수길은 서울을 대표하는 스트리트 상권으로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높은 유동인구와 브랜드 파워를 본 대형 프랜차이즈와 글로벌 브랜드가 잇따라 진입하면서 임대료가 치솟았고, 이 거리의 정체성을 만들었던 소규모 독립 점포들은 하나 둘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개성 있는 골목이 비싼 대로변 상권으로 성격이 전환된 것이다.

쿠시먼앤웨이크필드(Cushman & Wakefield)의 조사에 따르면, 가로수길의 1층 상가 공실률은 2023년 2분기 36.5%에서 2024년 4분기 41.2%로 올랐고, 2025년 2분기에는 43.9%를 기록하여 서울 주요 상권 중 가장 높은 수준에 달하였다. 같은 시기 명동의 공실률이 5%대, 홍대·합정이 10%대인 것과 비교하면 그 격차가 극명하다.
주목해야 할 것은 공실률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임대료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물의 매매 가격은 임대 수익률에 기반하는데, 임대료를 낮추면 건물의 자산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리맥스 저널 2026년3월호에서 다룬 바 있는데, 임대인이 명목 임대료를 유지하려는 것은 ‘자산 가치 방어’를 위한 당연한 전략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전략이 공실의 장기화를 초래하고, 장기화된 공실이 다시 상권의 매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로수길의 현재다.
가로수길이 이야기해 주는 바는 명확하다. 골목이 브랜드가 되는 순간, 그 브랜드를 만든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난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를 채운 것이 비슷비슷한 간판이라면, 골목은 더 이상 ‘목적지(Destination)’가 되지 못한다.
경리단길 – 39곳 중 5곳만 남은 이유
용산구 이태원동, 옛 국군재정관리단(經理團)에서 이름을 딴 경리단길은 가로수길보다 더 극적인 흥망의 궤적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010년대 초반, 이태원 상권이 확장되는 흐름 속에서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하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지닌 이 골목에 소규모 독립 레스토랑, 와인바, 디저트 카페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대로변이 아닌 경사진 골목, 간판도 작고 좌석도 적은 가게들이 오히려 ‘발견하는 재미’를 제공하며 2015~2017년 경리단길은 서울에서 가장 ‘힙(Hip)’한 장소로 부상하였다. ‘경리단길’이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밈(Meme)이 되어, 이후 전국의 핫플레이스에 ‘~리단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방문객 급증과 함께 임대료가 가파르게 올랐고, 이 골목의 매력을 처음 만들었던 소규모 독립 업주들이 버티기 어려워졌다. 헤럴드경제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용산구가 ‘세계음식지도’에 선정했던 경리단길 식당 39곳 중 34곳이 폐점하여, 생존율은 12.9%에 불과하였다. 상권이 전성기를 맞은 지 불과 3~5년 만의 일이다.
경리단길의 사례는 서울 골목 상권의 수명이 얼마나 짧아지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과거 전통적인 상권이 10년 이상의 주기로 부침을 겪었다면, SNS와 플랫폼이 상권의 형성과 확산을 가속시키는 시대에 골목의 전성기는 3~5년으로 압축되고 있다. 뜨는 속도가 빨라진 만큼, 식는 속도 역시 빨라진 것이다.
경리단길이 남긴 가장 뼈아픈 교훈은 이것이다. 개성 있는 소상공인이 만든 골목의 매력은 곧 임대료 상승의 원인이 되고, 그 임대료가 매력의 원천인 소상공인을 내쫓는다. 자신이 만든 가치에 의해 자신이 밀려나는 것, 이것이 상업 젠트리피케이션의 잔인한 역설이다.
‘가치를 만든 사람’과 ‘가격을 매기는 시장’ 사이에서 가로수길의 공실률 43.9%와 경리단길 식당의 생존률 12.9%. 이 숫자들이 말하는 것은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다. 골목이 브랜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가치를 처음 만든 임차인과 그 가치를 가격에 반영하는 시장 사이에 메울 수 없는 시간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권의 가치를 만드는 것은 낮은 임대료를 감내하며 실험적으로 들어온 첫 번째 임차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들어 놓은 유동인구와 화제성은 곧바로 부동산 가격에 반영되고, 정작 그 가치를 창출한 당사자들은 올라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떠나게 된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프랜차이즈와 대형 브랜드가 들어서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일한 간판은 더 이상 그 골목만의 ‘이유(Why)’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골목 상권이 반복적으로 밟아갈 수밖에 없는 흥망의 공식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이 공식적 순환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인 것인가? 모든 뜨는 골목은 결국 이런 순환을 거쳐 식을 수밖에 없는가? 지금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성수동과 연남동에서,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을 제도적으로 막아보려는 정책의 현장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
(5월호에서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리맥스 마이스터 설인권 전무
필자가 몸담고 있는 리맥스 마이스터는 서울 중구 무교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명동을 비롯한 서울의 중심 상업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1:1 부동산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리맥스 마이스터는 숙련된 부동산 전문가들이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내외 부동산 시장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전략을 제공하고 있으며, 고객들에게 최적화된 투자 및 사업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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