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nter is coming(겨울이 온다).’ 몇 해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등장했던 유명한 대사이자 에피소드의 제목이다. 이 문구를 떠올리며 두툼한 겨울 외투를 꺼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따듯한 햇살을 피해 그늘을 찾게 되는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계절은 그렇게 반복되고, 달이 기울면 다시 차오르듯 우리의 삶도 그렇다. 이러한 섭리는 비단 자연에서 뿐 아니라, 도시와 공간에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을지로는 과거 인쇄소 셔터가 내려 있던 황량한 뒷골목이었다면, 수년 전부터 ‘힙지로’라는 별칭으로 재조명되어 평일 저녁에도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북적인다. 그 풍광과 분위기에서 겨울에서 봄이 찾아오듯 움트는 변화를 함께하고 있다.
‘구리개’에서 ‘황금정’, 그리고 ‘을지로’까지
조선시대, 을지로는 한양도성의 4대 문 안 지역 증 비교적 낙후된 지역이었다. 청계천 이남의 황토로 덮여있던 이 지역은 땅이 질었다고 하는데, 진 땅의 원인이 된 황토가 햇빛을 받으면 마치 구릿빛을 띤다 하여 ‘구리개’라 불렸다. 1963년 문을 열어 현재까지 충무로에 자리 잡고 있는 노포 ‘진고개’는 황토로 땅이 질었던 이 지역을 부르는 ‘구리개’의 다른 이름 ‘진고개’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외국인과 일본인들이 이곳에 터를 잡기 시작하면서 을지로의 ‘달’은 차오르기 시작했다. 1914년 조선총독부는 이 지역을 ‘코가네마치(黃金町, 황금정)’라 명명하며 현재의 을지로를 관통하는 도로를 개설하여 ‘코가네마치도리(黃金町通り, 황금정통)’이라 명명했다.
이 지역을 ‘황금정’이라고 명명한 것만 보아도 이는 당시 일본이 이 지역을 서울의 중심 금융·경제지구로 삼고자 했음을 상징한다.
자신들의 근거지가 서울의 중심지역이 되기를 원했기에 ‘본정(本町: 혼마치)’, ‘황금정 (黃金町: 코가네마치)’라는 명칭을 쓰고, 서울이 중심축이 되는 도로로 계획, 건설하며 금융과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맡는 지역으로 만들려 했을 것이다.
1920년대 후반에 제작된 여행 안내용 지도 ‘경성유람안내도(京城遊覽案內圖)’ 출처: 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의 4대 문 안과 용산 등 서울의 모습을 조감도처럼 그리고 전차노선, 기차역, 주요 시설들을 표시해 놓았다. 지도 내 붉은색 굵은 실선이 당시 전차노선이다. 일본어로 ‘프랑스교회’라 표기된 현재의 명동성당 옆으로 영락정통(永樂町通)으로 도로명 표기가 되어있는데, 아마도 현재 이 도로변에 ‘영락교회’가 이 길의 이름을 딴 것으로 보인다.
금융의 중심지에서 인쇄골목으로
동양척식회사, 십팔은행, 일본생명보험, 마츠야마(松山) 증권, 야마구치(山口) 증권 등 수많은 금융회사를 비롯해 스미토모, 미쓰이 등 굵직한 기업들이 을지로에 자리 잡고 번성했고, 수많은 인쇄소와 제본소들이 들어서 ‘을지로 인쇄골목’의 기원이 되었다. 신문물과 지식이 인쇄를 통해 태어났던 당시를 고려하면, 을지로가 이 시절 정점을 구가했으며, 많은 지식인과 문인들의 활동 중심지로 기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세계적인 게임회사 ‘닌텐도(任天堂: Nintendo)’는 일제 강점기 시절 ‘닌텐도 곳파이(임천당 골패; 1889년 창업)’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영업을 했다. 당시 자료에 의하면 한국 지점이 코가네 마치 3초메(황금정 3정목)로 표기된 바로 보건대, 을지로 3가에 지점을 두고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는 화투를 제조해 판매했으며, 1945년까지도 영업을 이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시절 닌텐도사의 안내문과 경성(서울)지점 모습. 안내문 맨 아랫줄을 보면 지점으로 현재 을지로3가의 주소를 표기해 놓았다. 출처: beforemario. Erik Voskuil
을지로의 변곡점: 광복, 전쟁, 그리고 세운상가
광복 이후, 일제식 지명은 우리말로 바뀌었다. 혼마치(명동, 충무로) 지역은 일본인들의 기세를 억누르기 위해 이순신 장군의 시호를 딴 ‘충무로’로 변경하였고, 구한말부터 화교들이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던 을지로 일대는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을 따서 ‘을지로’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남산 밑 몰려있던 일본인들의 주 거주지와 생활터전의 흔적을 두 동강내며 지워버리게 되는데, 명동 남부에서 광화문까지 이어진 그 길은 퇴계 이황 선생의 이름을 붙여 ‘퇴계로’라 명하게 된다.
을지로는 일본의 패망과 1950년 6·25 전쟁을 큰 전환점으로 삼아 변화의 시기를 맞이한다. 차 올랐던 달이 기울 듯, 인쇄업 등 경공업과 금융, 상업가가 형성되며 자본주의적 근대 도시의 모습을 갖추어 가던 을지로는 6·25 전쟁을 지나며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상태로 남겨지며 빈민촌이 형성되는데, 이는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과 지방 이주민들이 폐허로 남은 이 곳에 몰려들어 자리를 잡으면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이렇듯 거주와 상업의 기능이 어지러이 혼재했던 을지로는 1966년 도시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빈민가를 형성했던 주민들이 집단으로 이주하며 상업기능이 중심이 되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1968년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세운상가’가 들어섰고, ‘세운상가에서는 설계도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한국 경제 성장의 가운데 있었다.
한 때 이 지역의 활성화를 이끌었던 강남개발의 뒷전에서 (강남개발 당시 을지로 지역의 건축, 건설과 관련된 업종은 강남 건축의 수요에 따른 혜택을 많이 본 지역이다) 그 발전이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청계천 복원에 따른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빛을 발하며 차오르고 있다.
출처: sewoonplaza.com
CBD 상권, ‘힙지로’라는 도시 현상
앞서 언급한 바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모습으로 변모하는 중심에는 청계천 복원과 같은 정책적 요인이 작용을 한 부분도 있지만, 2010년대 초부터 을지로에 모여든 문화예술가의 역할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타일, 조명, 공구, 철물, 미싱 등흔치 않은 부품이나 재료를 구해야 하는 예술인들에게 낙후된 건물 탓에 낮은 임대료로 작업과 전시 및 소통을 제공하는 이 을지로의 골목은 분명 매력적이었을 것이며, 소위 ‘레트로’ 열풍과 혼합된 이 골목의 분위기는 점차 많은 젊은 예술가들과 이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문화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힙지로’라는 이름으로 상권이 형성되며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문화 예술인들이 공급한 콘텐츠는 소비자와 투자자를 불러왔다. 여기에 CBD의 대형 오피스 공급이 겹치며 센터원, 시그니처타워, 을지트윈타워 등의 개발과 함께 대형 오피스 인구가 유입되었고, 소비력 있는 인구의 정착은 상권 재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을지OB베어, 만선호프 등으로 대표되던 노가리 골목은 재개발로 철거되어 사라졌지만, 그 자리는 또 다른 변화로 채워지고 있다. 현재 을지로3가 일대에는 13~14개 재개발 구역이 진행 중이며, 세운상가를 포함한 광범위한 도시재생 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을지로는 ‘주거+문화+일자리’가 공존하는 미래형 도심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재개발로 철거 이전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야장의 인파. ‘만선호프’, ‘을지OB베어’, ‘뮌헨호프’ 등 당시 ‘을지로 노가리골목’을 지키고있던 호프집들과 이들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출처:한국관광공사
을지로에 유입된 예술인들이 만들어낸 문화와 콘텐츠는 마르지 않는 젖줄과 같이 단순한 창작을 넘어, 문화 및 상업 소비자의 유입을 불러오며 CBD 지역의 재생과도 맞물렸다. 을지로입구에서 을지로4가역에 이르기까지, 도시재생 및 재개발을 배경으로 대형 오피스들이 속속 들어섰고, 이에 따라 소비력이 높은 인구가 유입되면서 ‘힙지로’ 현상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대형 오피스 공급은 이 지역의 상권을 되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을지로3가역을 중심으로 업무지구로의 대변신을 예고하듯, 대로변에 높게 세워진 높은 펜스들 너머로 보이는 활발한 공사 현장은 이 일대의 소비 인프라가 더욱 강화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변화가 더디게 진행되는 것 같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멈추지 않고 나아가고 있다. 을지로3가 파출소에서 을지로4가 방향으로 이어진 대로변에서는 기존의 건자재·조명 가게들이 식당으로 하나둘 전환되고 있으며, 내부 골목상권 역시 충무로 방향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1분기부터 2024년 4분기까지, 을지로 중대형 상가의 임대료 상승률은 무려 약 50%에 달하며, 이는 같은 기간 명동과 강남 주요 상권의 10%대 상승률을 압도하는 수치다.
물론 이러한 수치와 현상들이 을지로 상권의 변화에 대해 단순히 긍정적인 평가만을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종종 언급되는 경리단길처럼, 상권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소비력이 집중될 경우 피할 수 없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성장하는 상권일수록 그에 따르는 필연적인 현상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며, ‘젠트리피케이션’이 을지로 상권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리단길과 같은 외곽형 상권은 내재된 소비력이 약하고, 상권의 특이성과 분위기에 의존해 외부 소비자를 유입하기 때문에 대규모 자본 유입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높아진 임대료는 상권의 원래 정체성을 지탱하던 구성원들을 떠나게 만들고, 그로 인해 고유하고 독특한 매력을 상실한 상권은 소비자 유입이 줄어들며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을지로는 다른 시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서울에는 상업지역으로 지정된 여러 지역이 있지만, 그중 대부분은 일반상업지역이다. 강남 업무지구(GBD)와 여의도 업무지구(YBD) 역시 모두 일반상업지역에 해당하며, 중심상업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서울 전역에서 명동과 을지로 일부로만 한정되어 있다. 이는 을지로가 서울 상업지역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입지라는 의미다.
향후 을지로는 내부적으로 강력한 소비 기반을 갖추고, 외부적으로는 끊임없는 유입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상권은 기존 외곽 상권들과는 달리, 젠트리피케이션이 상권의 축소나 이전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상권의 확장과 고착화라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특히 CBD를 포함한 을지로 일대는 이미 높은 소비력을 가진 고정 인구를 바탕으로, 서울의 다양한 관광 콘텐츠와 결합하여 지속적인 유입이 가능한 공간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서울이 공존하는 복합적 장소로서의 을지로를 더욱 강하게 만들며,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사회적 현상 또한 이곳에서는 상권 쇠퇴가 아닌 중심 확장과 주변 상권과의 교류 및 고착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부동산 투자자에게는 보다 합리적인 분석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힙지로’ 상권(굳이 ‘을지로 상권’이 아닌 ‘힙지로’라 부르는 것이 이 지역의 독특한 상권 확장 성격을 설명하는 데 더 적절하다)은 이미 충무로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는 충무로 내 신규 호텔과 오피스 건립 등 고정 소비력을 뒷받침할 기반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며, 상권 확장 속도 역시 점점 빨라지고 있다. 앞으로 세운상가 일대와 을지로4가 지역까지 아우르는 도시재생과 재개발은 다소 더디게 느껴질 수 있지만, 특별한 변수만 없다면 마치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점차 그 크기와 속도를 키워갈 가능성이 높다.
오래 전 우리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을지로는 서울의 중심으로 차오르기 시작했고, 역사라는 거대한 물줄기 속에서 기울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차오를 준비를 마쳤다. 머지않아 을지로는 다시금 가득 찬 보름달처럼 서울 도심의 중심에서 찬란히 빛날 것이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을지로.
리맥스 마이스터, CBD 지역의 전문가
필자가 몸담고 있는 리맥스 마이스터는 서울 중구 무교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 명동을 비롯한 서울의 중심 상업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1:1 부동산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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